두루의 활동/두루와 연대

주민운동 50주년 역사순례

두루두루배움터 2021. 12. 7. 13:29
"주민운동 50주년 역사순례"
첫날- 11월 9일-주민운동의 시작, 청계천판자촌
성동공유센터를 시작으로 논골신협, 성동두레생협 그리고 성동평화의 집, 논골새싹 어린이 공원을 돌아보왔다.
논골신협의 출발, 두레생협이 지금 그자리에 오기까지
논골새싹 어린이 공원이 지금의 공원이 되기까지
논골새싹 어린이 공원 뒤 행당대림아파트가 서기까지
어떻께 투쟁했는지 짧은시간이였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지금은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가 함께 입주해있다고했다.
가난했던 사람들의 기본 삶을 누리기 위해 투쟁해서
얻어낸 저 아파트는 분양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처음에
임대아파트 사람들이 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었다고했다
그 조차도 싸워서 이겼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왜 화가나고 어지러울 정도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임대와 분양은 글자만 다른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삶도 달라야 하는것일까?
점심은 블랙앤 압구정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블랙앤 압구정?? 스테이크를 파는건가
'아잉~ 스테이크 나 괜찮은데 ~ 아잉~~ '
그러나 블랙앤 압구정은 짜장면집이였다
오후일정은 말 그대로 본게임이었다
비는 오락가락 찬바람이 부는 차가운 날씨
그 추운날씨보다 판자촌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듣는 내내 시리고 아프고 애절했다.
1974년 일어난 일들이라는것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차리, 귀똥, 지원은 그 시대에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때였다.
청계천판자촌 그시절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수있을까?
청계천을 걸었다.
제1 활빈교회 배달학당이 있던 장소에 서서 그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상상히 가질 않는다.
제 3 활빈교회와 개미촌지구가 있던 장소로 다시 걸어가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제2 활빈교회 탁아소가 있던 장소로 또 다시 걸어갔다. 이야기를 들어도 정말로 머리속에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의 가슴은 차갑고 아프고 시렸다.
불과 50년도 채 안되는 대한민국 서울에 모습이다.
너무도 가난했던 배고파서 울부짖던 그냥 우리내 모습이었다.
우리가 걸어온 청계천에는 수십만의 판자촌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살았을까?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의식주 조차 여기에서는 사치였다.
빈민들이 많이 모여살면 폭동을 일으킨단다.
그래서 판자촌을 다 밀어버렸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지하철이 우선이었다.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판자촌 사람들을 다 쫒아내었단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화가난다.
그저 가진것이 없었을 뿐인데
그들은 사람답게 사는것조차 힘이들었다.
정말로 다 어디로 갔을까?
청계천이 흐르듯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주민운동 50주년 역사순례는 우리의 가슴에 커다란 대포를 쏘왔다.
가슴한구석이 큰 구멍이 난것 같다.
첫날을 시작으로 앞으로 5번의 역사순례가 남아있다.
남은 역사순례도 모두 무탈하게 진행되길 기도한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온 청계천 판자촌과 성동에 이야기는
평생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낼것이다.
오늘 준비해주신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